약수터만 보면 도지는 나의 병, 꽉 잠그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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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쌀쌀해진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지, 그렇게 추울 줄도 모르고 별 준비 없이 하남에 있는 검단산을 올랐어요.
같은 코스로 두 번째 오르는 거라 중간에 우리가 '깔딱 언덕'이라 이름 붙인 죽을 것 같은 구간을 떠올리며 그곳만 잘 참고 오르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엉뚱하게도 추워서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높지 않은 산이기도 했고 혼자 간 게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겨울 산 만만히 보면 안 된다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빨간 화살표 길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간간이 해가 비치는 오른쪽 뺨은 그나마 낫고, 바람 몰아치는 왼쪽은 떨어져 나갈 것같이 아프기까지 한 고통(?)을 참아 내며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어요.
처음 이산에 올랐을 때 제일 감탄했던 곳이 바로 이 정상입니다.
남편이 찍은 이 사진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정상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정상은 처음 본 것 같았어요.
산꼭대기를 평평하게 잘라 놓은 것 같은(실제 그랬을 수도 ㅎ), 시야가 360˚ 확 트인 이곳에 처음 올랐을 때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왼쪽에서는 북한강이, 오른쪽에서는 남한강이 만나 내려와 팔당호와 팔당댐을 만들고 있어요.



코와 뺨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추위에도 강물은 햇살을 튀겨내고 있었고요,

 



잠시 비추던 해가 구름 뒤로 숨으면 더욱 추워져 그야말로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흐린 것보다 맑은 하늘이 좋기는 했지만, 그래서 더욱 쨍하게 추웠던 ….

 



이 사진을 보고 있으니, 삶에도 저 높은 곳에 계실지 모를 신이 정한 이정표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 갑은 아랫배알미로 가거라, 인간 을은 애니메이션고 쪽으로 가거라~ " ㅎ

만약 그렇다면 인간의 '노력'은 다 쓸데없는 일이 되겠지요?
아~ 슬프다~

 



정상까지 오를 동안 두 곳의 약수터가 있어요.
사람 많아 시끄러운 등산로라면 상관없는데, 이곳처럼 (내가 간 시간이 일러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조용한 길은 약수가 졸졸 흐르는 소리가 저만큼 올라가도 제 발목을 잡아요.
왜냐구요?
어쩐지 덜 잠긴 수도꼭지에서 물이 졸졸 흐르는 것 같아 신경 쓰입니다.
자연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뿐인데 말이지요.

다시 내려가 약수를 꽉 잠그고 싶어져요. ^^
이것도 직업병이랄 수 있겠지요?
주부라는 직업병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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