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보다 광개토대왕이 더 좋은 이유

부지깽이와윤씨들|2008. 5. 1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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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울 아들은 독서록 쓰는데 목숨을 걸었다.
뭐 특별히 재미를 붙여서 알찬 내용을 쓰는데 신경을 쓴다기 보다, 독서록을 10개 쓸 때마다 교실 게시판에 스티커가 한 장씩 붙는단다.

그래서 친구와 선의의 경쟁이 붙어 요즘 매일 옛날에 읽었던 책까지 다시 읽고 장수 채우는데 여념이 없다.

평소 꼼꼼한 성격때문에 나를 걱정 시키곤 했던 (내 성격과 똑 같아서 그 성격이 얼마나 자신을 피곤하게 하는지 뼈저리게 아는지라) 녀석이 이 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제도 변함없이 '광개토대왕' 책을 옆에 놓고 열심히 써내려가던 아이가 뜬금없이
"엄마, 난 율곡보다 광개토대왕이 더 좋아."
한다.  율곡과 광개토대왕의 역사적 의의나 정치적 차이점등을 놓고 비교 분석해서 어떤점 때문에 더 좋다고 말하길 바랬던것 까진 아니지만(고작 초등  3학년 사내녀석에게 말이다) 녀석의 설명을 듣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율곡 보다는 광개토대왕이 이름이 더 길잖아.   율곡은 두 글자밖에 안되는데, 광개토대왕은 한번 쓰면 이 만큼이 되잖아.   시험 답안지 쓸때는 짧은 율곡이 좋은데 독서록 쓸때는 광개토대왕이 짱 좋아."
딱 그 나이에 맞는 '율곡 보다 광개토대왕이 더 좋은 이유'아닌가.

내가 녀석의 성격을 걱정한 이유는 내가
"꼭 한장씩 가득 안채우고 내용이 많지 않으면 몇 줄은 남겨도 되잖아.   스트레스 받지 말고."
했더니
"선생님도 두 줄은 남겨도 된다고 하셨는데, 봐봐 엄마(공책을 앞 쪽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며) 여기도 다 채웠지 여기도 다 채웠지,여기도 다 채웠지 근데 갑자기 줄을 남겨 놓으면 이상하잖아.   그리고 스트레스 안 받아, 조금 부담이 되서 그렇지."
"이 녀석아, 부담이 스트레스야."
"괜찮아, 줄 남기는게 더 신경쓰여."
이 정도면 혹시 꼼꼼한게 아니라 편집증?



아들아, 우리 성격을 조금만 바꿀까?   엄마가 살아봐서 아는데, 그 성격이 항상 필요한건 아니거덩.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기도 하더라구.
쬐끔만 느슨하게 살도록 노력해 보자구.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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