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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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유명 인사유피?

지금으로부터 이십 몇 년 전, 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중간 고사인지 기말 고사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시험 기간중이었지요.
내일 시험 과목 중에 한문이 들어있었습니다.
부수나오고 옥편 찾는 법이 나오면서 부터 흥미를 잃고 있던 한문이었지만, 예쁜 한문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다른 과목은 다 제쳐두고, 그 날은 날밤을 꼬박 새워 한문을 열심히, 아주 열심히 공부했답니다.
그래서인지 한문 시험지를 받아보니 문제들이 쉬웠습니다.
역시 공부한 보람이 있구나 싶어 신나게 답을 쓰고는, 편한 마음으로 전날 밤을 새운 후유증에 엎드려 잤습니다.


며칠 뒤 선생님이 채점하신 문제지를 (그때는 OMR카드가 사용되기 시작할때라, 카드를 쓸때도 안쓸때도 있었어요.) 각자 본인에게 나눠 주시며, 혹시 잘 못 채점된것이 있나 확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문제지에는 열심히 공부한 덕에 동그라미가 계속 이어졌고, 마지막 25번 주관식 문제도 동그라미였지요.
그.런.데. 이런~~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마지막 주관식 문제가 '호사유피 인사유명'이라고 한문으로 써 있고, 한글로 해석해서 쓰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자신있게 쓴 답은
'호랑이는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가죽은 남긴다'
였습니다.
글씨도 어찌나 자신감이 넘치게 큼직하게 써놓았는지, 채점하시는 선생님도 설마 이 문제가 이런식으로 엉뚱하게 틀렸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셨나봅니다.

순간, 이걸 얘기를 해야 하나 어째야 하나 갈등이 생겼습니다.
다른 문제에서 틀렸다면  얘기하기가 쉬웠을텐데, 너무 어이없게 답을 써서 틀린게 창피한게 아니라 답 내용이 부끄러웠습니다.
잠시 동안 갈등한 후에, 선생님께 가지고가 이실직고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보시더니, 어이가 없으셨는지 웃으시며 소리내어 읽으셨고 반 아이들도 한 바탕 웃음이 터졌지요.
저도 따라 웃고 말았답니다.
물론 동그라미 위에 더 크고 진하게 가위표가 쳐졌습니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니, 바닥을 쳐가며 웃어대네요.
따뜻한 햇빛이 들어오는 교실에서 선생님과 아이들과 함께 웃던 그 날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겁니다.

지금와서 보면, 제가 쓴 답이 아주 틀린것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유명한 동물인 경우엔, 죽은 후에 이름이 뉴스에도 나오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요.
'인체의 신비전'을 보면 사람이 사후에 가죽을 남기는 걸 볼 수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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