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화장실에서 먹은건 초코파이만이 아니다

반응형
일요일인 어제 오전 중에 친정 엄마네를 갔더니, 아주 반가운 사람이 와 있습니다.
바로 올 봄에 입대한 조카였어요.
키만 커다래가지고 몸이 호리호리한 탓에 맥 없이 다니는 것 같던 녀석이, 까무잡잡한 팔뚝과 짧은 머리가 제법 멋있는 군인이 되서 왔습니다.
'다.나.까'로 끝나는 말도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그 말투에 제가 웃었더니
"버릇이 되서 말입니다."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하고 대답해 줬더니, 씩 웃는게 그제서야 어릴때 얼굴이 살짝 보입니다.

말 수 없는 제 엄마를 닮아서인지,식구들 모임에 와도  말 없이 앉아 있다가 가곤 하던 녀석이 말도 재미있게 잘 하고, 제가 커피 탄다고 일어 섰더니 자기가 한다고
"이모는 앉아 계십시오."
합니다.   원래 자기 여동생과는 다르게 저한테 존댓말을 하긴 했었지만, 깍듯한 존댓말을 들으니 우습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합니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조카가 문득
"저는 말입니다.   군대 화장실에서 초코파이만 먹는 줄 알았습니다."
하면서 얘기를 꺼냅니다.

초코파이가 그렇게 맛있는 건 줄은 군대 가서 알았지만, 새로운 걸 또 알았답니다.
조카가 아직 입대한지 얼마 되지 않은지라(비단 군대뿐만 아니라 어느 집단에서나 처음엔 마찬가지지만), 아무리 군대가 자유스러워 졌다고는 해도 아직은 모든 마음대로 할 수는 없겠지요.
조카가 있는 곳에는 항상 봉지 커피랑 컵이 비치되어 먹고 싶을때 타 먹게 되 있답니다.
하지만, 조카가 마시고 싶을때 마실 수 있는 그런 군번이 아닌지라, 몇 번 눈치 봐가며 먹다가 어느 날 커피 두 봉지를 들고 화장실로 갔더랍니다.
저는 비위생적인긴 해도 화장실의 개수대 물을 받아 타 먹었나 순간 생각했지만, 봉지를 뜯어 그냥 입에 털어 넣었답니다.  혹시 나와서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랍니다.
그냥 날 가루만 먹는 답니다. ㅜ


더 놀라운건 그 맛이 또 기가 막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종종 애용하는 방법이라네요.
언니와 엄마와 저는 한 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깔끔하고 새침한 편에 속했던 조카가 이렇게 털털하게 변한 걸 보니 군대라는 곳이 새삼 대단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오늘 아침에 커피를 한 잔 타는데, 나도 한 번 그냥 입에 털어 넣어 볼까 하다가, 조카와 나의 나이 차이가 20년 이라는 걸 생각하곤 참았습니다.  ^^

뉴스에서 들은 게 있어서 신종플루때문에 휴가 나오기가 어려웠겠다고 하니, 왠만한 휴가는 다 미루어 지고 말년 군인들과 신병들만 나왔다고 하네요.
조카도 아마 이번에 귀대하면 내년에나 나오게 될 것 같다고 합니다.
부모님들이 면회를 와도 예전 처럼 음식 차려 놓고 같이 앉아 먹는 게 아니라,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이 만큼 떨어져서 얼굴만 보고 간답니다.

다음 휴가때까지 건강하게 잘 있다가 더욱 씩씩한 군인 아저씨가 되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