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회장 당선이 반갑지 않은 이유

부지깽이와윤씨들|2009. 3. 1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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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이가 학교를 다녀 온 후 제 눈치를 슬슬봅니다.  
가만히 있어도 삼십분도 못 넘기고 얘기하는 그 아빠의 그 아들이라 모르는 척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먼저 얘기를 꺼냅니다.

 "엄마, 난 안나갈라고 그랬는데, 애들이 추천을 해서 억지로 나갔는데, 회장됐어."

아니, 왠 마른하늘의 날벼락?

사실 회장이 된 아들도, 이 엄마도 좋아서 폴짝 뛰어야 겠지만 이렇게 아이는 눈치 보고 엄마는 번개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때 처음으로 여자 회장이 되었는데, 시간이 되는 엄마들 몇몇이 아침에 건널목에서 아이들을 돌봐주기도 하고 가끔 교실 청소도 해주는 보람 교사의 반 대표로 제가 뽑힌겁니다.


  


대부분 뽑기 쉽게 아이가 회장이나 부회장인 엄마를 대표로 선출하지요.

킹왕짱 소심쟁이 부지깽이가 열 몇명 되는 엄마들의 대표가 됐으니, 대표로 뽑힌 3월 한 달을 잠도 잘 못자고 불안증에 아주 괴롭게 보냈습니다.  (나중에 저와 친하게 된 다른반의 엄마는 위염까지 걸려서 약까지 먹었답니다. )
너무 힘들어, 활달하고 씩씩한 다른 엄마에게 대신 맡아 달라고 애원(?)도 해 보았지만, 힘든 자리인줄을 알고 있었는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아이가  1년 후 새 학년이 될때까지 제 딴에는 마음 고생이 말도 못했답니다.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학교 불법 찬조금까지는 아니더라도 1,2학기초에 교실 꾸미는데 드는 비용이라던지, 체육대회때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음료수등을 위해 얼마간의 돈은 엄마들이 조금씩 모아서 하는데, 엄마들에게 얼마안되는 금액이라도 돈 얘길 전화로 한다는게 정말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남편은 그런걸 뭐하러 하느냐고, 다 불법이라고 나부터라도 본보기로 절대 하지 말라고 퉁박을 주니, 나도 다 아는 얘기고 하기도 싫지만, 아이가 걸린 일에 그런 십자가를 맬 만큼 제가 당차지 못합니다.
가끔씩 청소를 해 주러 학교에 가는 것도 아이들이 스스로 하게 두어야 된다고, 마땅찮아 해서 저는 이중으로 더 피곤했었지요.

다른 누군가가 먼저 나선다면 힘껏 응원할수는 있지만, 내가 나선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그렇지만 많은 액수도 아니고, 내 아이나 같은 반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쾌적한 교실에서 공부하고 체육대회때 시원한 물 한 모금 먹게 하는게 문제가 될리가 없기에 엄마들은 흔쾌히 돈을 모아주었습니다.

청소할때 오라고 전화하는 것, 비용을 조금이라도 쓰면 내역을 또 일일이 전화해야하고, 가끔 학교에서 전달 사항이 내려오면 다 알려야하는 등 결코 편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전화를 한 번에 받는 것도 아니어서 통화가 안되면 몇 번이고 다시 걸어서라도 얘기를 해야지, 만약에 한 두 사람 빠트렸다가는 나중에 말 듣기 딱 좋게 되지요.

제가 집에만 있는게 아니라서 학교 행사가 잡히면 몸과 마음이 모두 심란해서 딱 죽을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1년이 지난 후 몇 년동안을 학교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상황인 것이지요.

시간이 여유가 있고 활달한 엄마들이라면 재미있게 해냈을 일을, 어부지리로 떠 맡은 제게는 아주 짐스러울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담임 선생님이 아주 좋은 분이셔서 이것 저것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아이들이 새 학년이 올라갈때마다 절대 회장이나 부회장도 맡지 말라고 이 못난 엄마는 신신 당부를 했건만, 이 번엔 얼떨결에 당선이 됐으니, 어떻게 하면 반대표를 안 할수 있을까 지금부터 궁리중입니다.

밀려드는 당혹스러움을 감추고 축하한다고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를 해 주니, 그제서야 마음 놓고 좋아하며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네요.  
회장 선거에 나가지 말라고 협박을 하는 엄마는 이 세상에 나 밖에 없을거란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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