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장아찌와 영화 한 편 찍던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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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 햇마늘이 나올때가 됐나봐요.  
슈퍼앞에도 몇 다발씩 쌓여 있고, 트럭 가득 싣고 팔러 다니시는 분들도 보입니다.
햇마늘로 마늘 장아찌를 담그신다고 사시는 분들도 계시네요.

식사중에 두 세번 집어 먹는 깔끔한 장아찌맛은, 여러 반찬을 먹어 복잡해진 입안을 정리해 주는 느낌이 듭니다.
단, 한 끼 식사중에 두 세번만 먹었을때 효과가 있습니다.
밥 한 그릇을 주먹만한 마늘 장아찌로만 먹었을때는, 속쓰림의 부작용이 있습니다.
마늘 장아찌를 볼때마다, 특히 햇마늘이 나오는 요즘이면 어김 없이 떠오르는 영화 같은 한 장면이 있답니다.

때는 바야흐로 1994년 7월 어느날.
결혼 후 첫 여름 휴가를 시골에 있는 큰 형님집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시부모님이 두 분 모두 돌아가셔서, 남편에게는 큰 형이자 제가 제일 사랑하는 저의  형님이 사시는 곳이 저의 시댁입니다.
마흔 넘은 나이에도 소심하고 부끄럼 많은 이 성격이, 그 당시에는 오죽했을까요?

식사시간이 되어 상을 차리는데, 커다란 둥근 상에 모두 함께 둘러 앉아 먹을 수 있게 차렸습니다.
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갓 결혼한 새댁인지라 누가 무어라 하지 않는데도 고개 조차 잘 못들겠는겁니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을지경이 됬지만, 그 당시에는 젓갈을 많이 쓰는 음식들 때문에 제가 먹을 만한 반찬도 별로 없었지요.

다행히 입에 맞는 열무 김치가(지금도 우리 형님의 열무 김치가 저는 먹어본 김치 중에 제일 맛있답니다.)있었지만, 불행히도 김치 그릇은 태평양 바다 만큼 넓어 보이는 상 저 쪽 큰 아주버님 앞에 있는 겁니다.
고개도 편히 못 드는 상황에서 반찬 먹자고 팔을 쭉 뻗어 상을 가로 질러 김치를 집어 올 것인지, 혹시 그렇게 해서 손이 닿으면 다행이지만, 넓은 상과 길지 않은 저의 팔 길이때문에 젓가락이 안 닿아 어색하게 팔을 접어야  하면 어쩌나, 만약 그렇게 되서 누군가 눈치를 채고 김치 그릇을 내 앞에 놓아주면 얼마나 뻘쭘할까, 밥 한 두 숟갈 먹는 사이에 108번뇌는 다 겪은 듯 했습니다.

그때 제 앞에 있는,  형님이 갓 담근 마늘 장아찌가 눈에 띄었던 거지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진짜로 저의 주먹만한 통 마늘 장아찌를, 세로로 반 잘라 놓은 것 두 덩어리를  밥 두 세 수저 남겨 놓고 다 먹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형님이
"자네, 마늘 장아찌를 좋아 하는가 보네."
"네, 잘 먹어요, 호호호"
"그래? 입에 맞는 반찬이 있어 다행이네.  더 갖고 올께."
하시더니, 다시 한 접시 가득 가져 오시며
"저번에 내가 햇마늘로 담근거네.   덜 삭아서 조금 맵지 않은가?"
"아니요. 저 매운거 좋아해요.호호호."

결국 밥 한 그릇을 마늘 장아찌로만 다 먹었습니다.
식사후 밀려 오는 속쓰림과 입 안 가득 퍼져 있는 마늘 냄새를 표 안나게 참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 그 순간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저의 머릿속에 웃음과 함께 남아있습니다.
우리 형님, 혹시 이 글을 보면 제게 말하겠지요.
"오메, 그랬는가? 말을 하징~~"

그래도 형님, 그 때 먹었던 마늘 장아찌 맛은 일품이었당께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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