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아내의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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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편은 이상합니다.
자신의 옷이나 신발 등을 살 때는 싼 걸로 사면서도, 물건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나 아이들의 물건은 내가 싼 걸 고르면,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비싼 걸로 사게합니다.

저도 아이들에게 비싼 걸로 사주고 싶지만, 금방 자라는 아이들이라 한두 해 입고 신고 하다보면 금방 작아지는지라 저렴한 걸로 고르게 됩니다. 
제 신발이나 옷을 살때도 싼 걸로 사서, 마르고 닳도록 신고 입고 다니지요.
그래도 내가 남편것을 살 때는 좋은 걸 가끔 사기도 했는데, 그나마 인터넷 쇼핑이 생긴 이후로는 본인 스스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저렴한 것들 뿐입니다.

아마도 남편의 눈은 자신을 위한 것들을 살 때 보는 눈과  가족들의 물건을 살 때 보는 눈, 두 가지인가 봅니다.



항상 일이 만 원짜리 구두만 신던 제게,작년 여름부터  신발 운이 따랐나봅니다.
작년 여름에 동생이 여름 샌들을 선물로 사주면서부터  얼마 전까지,  비록 세일 때 사서 정가보다는 싼 가격에 샀지만, 그래도 비싼 신발이 두 켤레나 생겼습니다.

저 혼자 갔으면 절대 안 샀겠지만, 남편과 함께 갔는지라 거의 남편의 강압에 사게 됐습니다.
사이 사이에 내가 사준 딸아이 단화와 삼촌이 사준 운동화, 작은 아이 생일 때 사준 운동화.
그리고 얼마 전 구입한 여름샌들까지 새 신발이 몇 켤레나 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새벽에 일어나 무심코 현관에 벗어 놓은 남편의 구두를 보고 가슴이 꽉 막혔습니다.
뒷굽은 닳아 들려 있고, 앞부리도 낡아 처음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구두를 보고  '늙었다'라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습니다.

남편은 휴일에 외출할 때 운동화를 신는 것을 빼고는, 구두 하나로 뛰어다녔던 겁니다.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은 직업이라, 비 오는 날도 눈 오는 날도 그 구두를 신고 종종 걸음을 쳤겠지요.
왜, 이제서야 남편의 구두가 눈에 들어 온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과 저의 신발이 몇 켤레가 늘도록 남편의 신발은 왜 생각조차 안 했던건지, 제 자신에게 놀랍기만 했습니다. 남편에게 미안하고, 돌아가신 시어머님께조차  죄송스러웠습니다.

다가오는 남편 생일에 구두를 선물할까 하는데, 틀림없이 인터넷에서 싼 구두만 찾을 것이 뻔합니다.
"요즘, 싼 것들도 좋은 것 많아." 하면서 말입니다.
이번에는 비싼 구두로 사주고 싶은데, 어떻게 매장까지 끌고(?)가서 사게 만들지 궁리중입니다.

이렇게 반성문까지 써도, 미안한 마음은 줄어들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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