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머리 여왕인 딸의 한문 공부

부지깽이와윤씨들|2009. 9. 2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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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부터 2학기 중간 고사가 시작되는 우리 큰 딸.
엄마 아빠는 성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도 학년이 올라 갈 수록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밀려 오나 봅니다.
세상에 첫째가라면 서러워할 잠퉁이가 밤 11시 넘는건 대수롭지도 않게 됬어요.
며칠 전에는 코피까지 쏟았다고 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네요.
걱정을 했더니, 시험 기간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 그렇다며 괜찮다고 도리어 엄마를 위로 합니다.

우리 아이의 공부 방법 중에 하나는 엄마나 동생에게 공부 내용을 설명하면서 스스로 복습을 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수학같은 과목은 학창 시절에도 워낙 친하지 않았던 과목이라 대부분 못 알아 듣는데도, 제가 듣다가 지루하다고 하면 딸을 위해 참으라며 끝까지 하고 갑니다. ㅜ

오늘 아침에도 놀토에다가 남편도 좀 늦게 나간다고 해서 조금 늦게까지 자고 일어 났더니, 새벽부터 일어나 공부하고 있던 한문 책을 들고 제 옆으로 옵니다.
고사 성어를 배우고 있는 단계인지라 어렵다고 툴툴대며 또 설명을 시작합니다.
저는 사자 머리를 하고 반쯤 눈 감은 상태로 듣고 있었구요.


그런데 '왕형불형'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는 아이에 대한 예의(?)로 책을 내려 보다가 뒤집어 지고 말았습니다.
사진에 보이시나요?
원래 뜻은 왕의 형도 되고 부처의 형도 된다는 양녕 대군의 일화에서 비롯된 고사 성어인데, 일일이 쓰기 귀찮았던 아이가 짧고도 확실하게 답을 써 놓았습니다.

王兄佛兄 : 왕` brother   부처`brother
커~~~억

더불어 옆에는 원래 뜻은 책을 읽다가 양을 잃어버린다 (본분을 잊고 엉뚱한 일에 매달린다)라는 독서망양.
讀書亡羊 : read a book

!!!!!!!


남편이랑 돌려 가며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공부는 해야겠고 아는 답이니 주저리주저리 쓰기도 귀찮고, 어차피 혼자 보는 교과서니 자기만 알아 보게 간략하게 쓴다고 쓴것이겠지요.
그 마음을 충분히 알고도 남을 듯 했습니다.
장하다, 잔머리 여왕 우리 딸!!!! ^^




감동적인 '왕형불형'에 관한 유래입니다.
때는 조선 태종,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은, 아버지 태종의 마음이 자신이 아닌 셋째 충녕에게 가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왕의 자리에는 자신이 아닌 동생 충녕에게 더욱 어울린다고 생각한 양녕은, 그때부터 기생들과 어울리고, 미친척을 하며 세자의 자리를 박탈당하려 하였다.

 양녕을 폐세자해야 한다고 하는 목소리가  점점 거세질 무렵, 둘째 효령은 형 양녕이 폐세자 된다면 자신에게 왕위가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공부를 하고 있을때, 양녕이 찾아와 효령에게

 "아버지의 마음은 너와 내가 아닌 충녕에게 가 있고, 왕위는 충녕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아우야."라고 하며 홀연히 사라지고, 효령은 양녕의 말의 뜻을 알고는 왕위에 뜻을 두지 않고 불교에 귀이하여 부처가 되었고, 그리하여 결국 충녕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충녕이 왕이 된지 몇달이 지난 어느날, 양녕이 미친척한것을 아는 어느 한 사람이, 양녕에게
"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긴것이 억울하지 않으십니까"
하며 묻자, 양녕은
"나의 둘째동생(효령)은 부처이고, 나의 셋째동생(충녕)은 왕이니, 나는 곧 왕의 형도 되고 부처의 형도 되는 것 이거늘, 이 세상 나만큼 위대한 자가 어디있고, 더 부릴 욕심이 또 무엇이 있단 말이냐(王兄佛兄)"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고 한다.

 (실제로 양녕은, 세종과 그의 아들 문종때 왕실 어른으로서 여러가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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