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양은 도시락과 달걀프라이

간식도시락/도시락|2010. 2. 23. 13:16
반응형

밥 먹기가 약 먹는 것보다 더 싫은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살아오면서 무엇을 제일 맛있게 먹었었나 생각해 봤습니다.
10대에는 떡볶이, 20대에는 한참 유행하던 치킨, 30대 초에는 임신 말이라 한참 땅기던 고기와 밥.

그러다가 문득 싱크대 찬장 유리문을 통해 노란 양은으로 된 옛날 도시락이 보였습니다.
예전에 여주 이천 도자기 축제에 갔다가 기념으로 사 온 것이었어요.

30여 년 전 초등학교 때,  엄마가 어떤 반찬을 싸 주었었나 기억을 떠올리며 도시락을 담았습니다.

멸치 고추장 볶음과 김치 볶음, 분홍 소시지를 반찬으로 정했어요.
우선 소금 조금 넣고 달걀을 풀어 소시지를 부쳐 내고, 밥 위에 얹을 달걀 프라이도 만들었어요.

팬의 기름기를 닦아 내고 마른 팬에서 비린내가 가시도록 멸치를 충분히 볶아서 접시에 담아 두고, 팬에 고추장 조림장을 만들어 바글 바글 끓여요.
조림장은 고추장, 마늘, 맛술, 설탕, 생수, 생강가루를 섞었어요.  케찹을 조금 넣어도 색다른 맛이 납니다.
조림장이 끓으면 볶아 놓은 멸치를 넣고 잠깐 버무리다가 물엿과 파, 깨소금을 넣고 골고루 버무려 꺼냈습니다.  


밑반찬으로도 먹으려고 넉넉히 만들었어요.


언제 먹어도 맛있는 김치 어묵 볶음.
들기름 조금 둘러 김치를 볶다가, 당근, 양파, 끓는 물에 데쳐낸 어묵을 넣고 달달 볶아요.
간이 싱거울땐 고추장 조금 넣어요.


그 때처럼 병에 담았어요.


도시락 뚜껑에 젓가락을 넣을 수 있게 되있는 것도 있는데, 저는 한 번도 못써봤어요.
겨울에는 코끼리표 보온 도시락 가지고 다니는 친구들이 엄청나게 부러웠지요.


밥도 일부러 보리쌀, 현미등등을 평소 보다 많이 넣어 거무튀튀한 잡곡밥을 만들었어요.
그때는 잡곡을 섞어 먹도록 권장하는 광고도 있던때라, 선생님이 도시락 검사도 했었어요.

어려운 살림에 엄마가 달걀 프라이를 얹어 주면, 철 없는 저는 겨우 한 입이나 먹고 달걀만 남겨 가고는 했습니다.
나중에 도시락을 보시고는 엄마가 '이 아까울 걸... '하시던게 얹그제 같아요. (아~ 가슴 한켠이 아려옵니다)


아침에 싸 준 도시락을 점심때 열어 보면 달걀에서 기름이 배어 나와 달걀 주위에 있는 밥이 번들거리곤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도시락을 나누어 먹으면 이런 엄마의 가슴 아린 추억도 들려 주다 보니, 오랜만에 몇 숟갈이지만 맛있게 먹었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