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둘이만 살고 싶다는 남편의 이야기

부지깽이와윤씨들|2010. 3. 8. 11:36
반응형

대부분의 사춘기 딸이나 아들을 둔 부모들은 크고 작은 허전함을 느끼는가 봅니다.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그런 경우는 부모와 마찬가지로  예민한 아이들도 상처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제가 사춘기 때를 돌아봐도, 중 3이 된 딸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제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제가 약속이 있어서 나가면서 서점에 같이 가자는 딸아이와 약속을 했습니다.
저의 볼일이 끝날 때쯤에 밖에서 만나기로 말이지요.


저의 일이 길어 질 듯해서 혼자 가라고 전화를 했더니, 꼭 같이 가야 한다는 아이의 반 협박(?)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나와 서점에를 가야 했습니다.

가면서 이야기하다 보니, 아이가 엄마와 함께 가려고 한 이유가 제가 며칠 전 올 한해 3학년에 한해서 급식비가 면제된다기에 그럼 봄옷 한 벌 사줄까 하고 흘려 말한 걸 아이가 새겨 듣고는(그런 얘기는 잊어 버리지도 않더군요), 서점에 다녀오는 길에 옷을 사려고 한 거였습니다.

모든 일이 다 끝나고 저녁쯤에 집에 들어가니 설거지가 쌓여 있고 남편은 잠이 들었다가 막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이렇게 설거지거리를 쌓아 두고 있을 남편이 아니었기에 조금 의아했습니다.

저녁 식사와 곁들여 술을 한잔 하면서 설거지가 쌓여 있던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낮에 아이가 혼자 서점에 가려는 것 같아 아빠가 같이 가자고, 부랴부랴 씻고 준비를 하는데 아이가 싫다고 한 모양입니다.
정확하게 아이가 무어라 하며 거부했는지 몰라도 남편은 그 순간에 가슴에 대못이 박힌 것 같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르지.  그래서 설거지고 뭐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서 온종일 누워만 있었어."

내가 다정하게 다독여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것으로 충격받았으면, 내 속은 새카만 재만 남아 있겠네.   대 못 박히는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오늘 나하고만 가려고 한 건 옷이 사고 싶어서 그런 거야.   아빠 하고는 옷을 못 사니까.  무슨 딴 이유가 있겠어?"

남편 왈
"흑흑(물론 흉내만), 생각해 보니까 역시 자기밖에 없어.   얼른 60살 먹어서 애들 다 내 보내고 자기하고 둘이서만 살았으면 좋겠어...ㅜㅜ"
이 남편아, 그걸 이제 알았나.   우리가 우리 부모에게 그랬듯이 품 안에 자식이라.
우리에게 자식 키우는 행복을 알게 해 준 것만으로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고마워하고 더는 바라지도 맙시다.

남편이 말은 이렇게 해도 딸아이를 낳으면서 부터 시집 못 보낸다고 하고, 내가 딸은 자유롭게 멀리 여행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면 보고 싶어 안 된다고 잘라 말할 정도로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란 내가 해 준 만큼 바라게 되어 있어서, 남편이 때때로 아이에게 받는 상처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애들을, 특히 첫째인 딸아이를 끔찍이도 생각하는 아빠는 아이가 3살 때 배 위에서 놀던 때만 그리워합니다. 
그 추억은 치료약이고, 즐거움이고,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남편!
얼마 전에는 우리 예쁜 딸이 자기 팔짱 끼고 걸었었잖아.

그때 또래 남자 애들이 자꾸 예쁜 우리 딸을 쳐다본다며 눈에 힘주고 걸었다며.
가끔은 아빠와 영원히 평행선일 듯 보여도 자기 딸인데 어디 가겠어?

조금만 더 기다려봐.

우리 아들도 서서히 사춘기가 오는 것 같으니까, 자기가 딸한테 상처받았듯이 나도 아들한테 지금의 자기와 비슷한 상처를 받게 되겠지.
그때 우리 서로서로 상처 쓰다듬으며 삽시다.  ㅎㅎ

우리 애들도 이 담에 아이 낳아 그 애들이 사춘기가 되면 지금 우리 마음을 알겠지, 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