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정말 하기 싫었던 심부름 2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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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어린이.
심부름의 악몽이라고 이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어린 시절 정말 하기 싫었던 심부름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위로 언니들이 많아서, 제대로 대들어 보지도 못하고 자랐던 것 같아요.
울 엄마 처지에서야 가끔 말도 안 듣고 했던 딸이었겠지만(엄마가 되어 보니 딸과 엄마 입장이 다 보이네요. ^^), 바로 위에 언니 빼고는 언니들 말이라면 군말 없이 즉각 실행에 옮겨야 했지요.
아마 지금의 소심하고 자신 없는 성격이 그때 형성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에라도 언니들한테 소송을 제기해 볼까 봐요. ^^

첫 번째 하기 싫었던, 아니 겁났던 심부름.
울 아부지.
제가 막내딸이라고 다른 언니들보다는 예뻐해 주셨지만, 아주 무섭고 엄격하셨어요.
바로 위의 언니와 깔깔대며 놀다가도 아버지가 들어 오시는 기척이 나면 입 꾹 다물고 조용히 있어야 했을 정도입니다.
아버지 말씀에 토를 달거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습니다.

나이가 많이 드셔서는 끊으셨지만, 담배를 좋아하시는 애연가셨는데 가끔 외출복의 윗도리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시곤 하셨어요.
그런데 어린 저의 눈에는 벗어 놓은 윗도리의 왼쪽, 오른쪽이 구분이 얼마나 안 되던지요.
아버지가 왼쪽에 있을 거라고 말씀을 하시면, 한 번에 찾는 경우가 아주 드물었답니다.
안 그래도 헛갈리는데, 무서운 아버지가 보고 계시지, 한 번에 못 찾고 뒤적이기라도 하면
"아, 거기 왼쪽에 있다니까!"
호랑이 소리보다 무섭게 호통을 치시니까, 어린 저는 더 당황해서 식은땀 흘리며 이쪽저쪽 뒤지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울 아부지는 어린 딸이 찾을 수 있게 왜 조금만 기다려 주시지 않으셨을까요.
어느 땐 아버지가 말씀하신 주머니가 아닌 다른 주머니에서 나올 때도 있었지만, 언감생심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순간들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지금은 한 눈에 들어오는 '벗어 놓은 윗도리의 왼쪽 오른쪽' 이 그때는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두 번째로 싫었던 심부름.
밑으로 남동생이 있지만, 저와 6살이 차이가 나서 실질적인 막내의 의무(?)는 제가 다 해야 했어요.
그 의무란 바로 잔심부름하기입니다.

동네 구멍가게에 언니들이 심부름을 시키면, 예를 들어 과자나 라면을 사오라고 시키면서 정확히 상품 이름을 가르쳐 준 게 아니고, 대충 모양이나 색깔로 상품을 설명했던 것 같아요.
6살 때 글을 다 깨우쳤으니까, 물건을 잘 못 사 올 이유가 없었거든요.

시킨 물건을 사 오면 언니들은 꼭 다시 바꿔오라고 합니다.
그것도 짜증 있는 대로 내면서...

구멍가게 주인이 지금처럼 서비스 정신으로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도 아니었고, 어린아이가 물건을 바꾸러 가면 통박을 주기 일쑤였거든요.
정말 물건 바꾸러 가는 게, 그 당시에는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물건을 산 후 집으로 돌아가며 마음속으로 '제발 안 바꿔도 되길..' 기도하곤 했습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들이지만,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가끔씩 생각이 납니다.
아마도 아부지나 언니들은 기억도 못 하고 있을 일들이겠지요.
그렇게 무서웠던 아부지도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신데렐라의 못된 언니들 같았던 언니들도 어느새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다음에, 어린 시절 어떤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이야기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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