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다음 생애엔 내 딸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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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란 호칭은 대부분,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부를 때 혹은 사위가 장모님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으로, 예의는 갖추지만, 모세혈관부터 배어 나오는 듯 다정하게 느껴지는 호칭은 아니고, 어릴 때 부르던 '아빠'가 자라면서 '아버지'로 자연스레 바뀌는 것과는 상관없이 한 번 '엄마'는 영원히 '엄마'다.

이상은 저의 개인적인 '엄마'라는 이름에 대한 생각입니다. ^^
84세 되신 울 엄마도 외할머니를 아직도 '엄마'라고 부르시고, 가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먹이시는 걸 보면, 나도 엄마이지만 '엄마'란 이름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연세 드신 아버지에게는 자연스레 존댓말이 나오지만, 나이가 아무리 많으셔도 엄마에게는 반말이 허락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연탄아궁이가 있고, 부뚜막이 있고, 세탁기가 없고, 가스레인지가 없던 궁핍했던 70년대.
윗목에 두었던 물걸레가 하룻밤 자고 나면 그 모양 그대로 얼곤 했던 추운 겨울들.

어린 저는 가끔 엄마가 마법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한겨울, 실컷 놀다 저녁에 들어오면 쌓인 눈에 흠뻑 젖어 버린 나의 운동화가 다음 날 아침이면 말짱하게 말라 있었습니다. 살림을 좀 아는 지금 생각해 보면 부뚜막에 올려 말리셨을 텐데, 그렇게 한다고 해도 신발을 이리저리 돌려놔야 골고루 마를 텐데, 그 겨울밤에 잊지 않고 자리 바꿔 가며 신발을 말려 놓으신걸 알 턱이 없던 어린 저는 신기했습니다.

못 사는 집에 제사 돌아 오듯 한다고, 큰집이라고 제사는 또 얼마나 많은지.
역시 살림 경험이 있는 지금에야 손님 치를 일이 생기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 빠른지 대충 감이 와서 쉽지만, 재래식 부엌에서 잠도 안 주무시고 밤새 음식 준비하시는 엄마가 어릴 때는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엄마는 당연히 그런 걸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추운 수돗가에서 물 먹으면 더 무거운 겨울옷들을 손빨래해도 괜찮은 줄 알았고, 큰 일 앞두고 혼자 장보고 무거운 짐 끙끙대며 사 와서 잠 안 자고 불편한 재래식 부엌에서 오르락내리락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밤새 음식을 만들어도 괜찮고, 몸이 아파 당신은 못 먹어도 식구들 위해서 상 차리시는 것도 당연한 거고, 이유 모를 반항심에 뜬금없이 엄마에게 툴툴대도 다 받아주니 엄마 마음은 항상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한 겨울밤 자다 일어나 연탄불을 갈러 나가는 일도 다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내가 엄마가 되어 보니, 간혹 무거운 손빨래라도 하면 등이 갈라지는 것 같고, 혼자 장을 보고 오면 팔에 근육통이 옵니다. 내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고, 이유 없이 툴툴대는 딸 아이 말에 가슴에 대 못이 박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아마도, 제가 그랬듯 저의 딸도, 엄마는 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요.

몸 고생, 마음고생 많이 하시다가 늘그막에 조금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지시니, 여기저기 아프셔서 고생하시는 울 엄마.
그렇게 아픈 엄마를 보고 마음 아파하며 집에 와서는, 내 자식들 예뻐하며 잠깐씩 아픈 엄마를 잊어버리는 저를 깨닫게 되면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심한 죄책감이 듭니다.

엄마, 다음 생애엔 내 딸로 태어나요.
엄마가 나한테 아이들한테 잘해서 예쁘다고 칭찬하시는 것보다 더 엄마한테 잘해 줄게.
아버지랑 결혼도 안 시킬게.
몸 고생 마음고생 안 시켜서, 내 딸인 엄마가 84살 나이가 되었을 때, 지금처럼 여기저기 안 아프게 건강하게 자라게 해 줄게.
제발 더는 아프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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