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통화로 천 냥 빚 갚는 만 냥 짜리 마음씨 ^^

부지깽이와윤씨들|2011. 4. 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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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 집으로 들어가는 길.
작은 아이 학교 길이 내가 주로 이용하는 길인데, 운 좋게도 하교하는 아이와 만났습니다.
엄마를 보자마자 잠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드는 아이.
"엄마, 안경다리 부러졌어."
"엥? 어쩌다가?"

2월에 처음으로 안경을 맞추었는데, 안경점 직원분이 그러더군요.
"남자아이들은 오늘 맞추고 내일 다시 맞추러 오는 경우도 많아요."
2달이 넘어가는데 잃어버리지도 않고(안과에서 공부할 때만 쓰라고 해서, 학교에서만 쓰고 대부분 안경집에 넣어서 다닙니다.), 렌즈에 상처도 없이 잘 쓴다고 혼자 기특해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 *가 축구공으로 골프 하는 거보여 준다고 해서 보고 있었는데, 공이 내 얼굴로 날아왔어."
"뭐~~? 조심하지, 얼굴은 안 다쳤어?"
"안경다리만 부러졌어. * *가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했어."
"다행이네. 안경 쓰고 다치면 더 위험해. 안경이 부러지거나 깨지면서 얼굴이나 눈까지 다치게 할 수 있으니까. 집에 가방만 내려놓고 얼른 안경점 다녀오자."
(제가 이렇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이유는 아이 안경이라 안경테를 저렴한 걸로 맞춘 까닭입니다. ㅎ)

따뜻했던 어제, 아이와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학교 얘기, 친구 얘기 들으며 즐겁게 가서 안경테를 다시 맞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모르는 번호인데 전화가 왔습니다.
광고에 보험에 카드사에 귀찮은 전화가 많은지라 받을까 말까 5초쯤 망설이다가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 * 엄만데요."
"예? 누구시라구요?"
"@@친구 * * 엄마요."
이런 이런, 금방 아이에게서 안경다리 부러지게 한 아이 이름이 * *라는 걸 들었으면서도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 * *요?"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아이, 얼른 자기 안경을 가리킵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호호호. 제가 정신이 없어서요. 호호호. 웬일이세요?"
민망함에 웃음 섞어 인사를 합니다.
"우리 * *가 @@ 안경을 망가뜨렸다고 해서요. 다시 맞춰줘야 할 것 같아서요."
정말 저는 터럭만큼도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아이 친구에게 한순간도 원망 비슷한 마음도 안 들었기에 당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아이구~ 아이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뭐. 괜찮아요. 안 그래도 지금 다시 맞추고 오는 길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호호호. "
"그러셨군요. 죄송해서 어떻게 해요."

미안하다는 말과 괜찮다는 말이 두 세 번 더 오간 후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혀 생각도 못 했던 사과 전화였기에, 오히려 제가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내아이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아이가 다친 것도 아니니까) 굳이 얼굴도 모르는 저에게 사과 전화를 걸어 준 그 엄마에게서 어제 날씨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씨를 느꼈습니다.

말로 천 냥 빚 갚는다는 말이 있지요.
안경다리 하나 부러뜨린 게 천 냥 어치의 빚은 아니지만, 이 따뜻한 봄날을 더욱 행복하게 해 주는 천 냥 만 냥짜리 마음씨라는 건 확실한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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