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전화받는 아줌마, 접니다~

반응형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이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던 한 날.
그날은 유난히도 동네 길이 한적해서 조금만 큰 소리로 얘기하면 주위에 예닐곱 집에선 우리 대화에 동참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아파, 아이야~~ ♪'하며 아이유가 전화 왔다고 알려줍니다.
전화번호를 보니 엄마시네요.
일단 목청을 한 번 가다듬고 전화를 받습니다.

"흠흠~ 응, 엄마!!"
아마도 무언가를 가져가라고 전화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알았어!! 내일 오후에 들를게!! 엄마!! 식사는 하셨어?!! .... 다행이네!!.. 애들하고 어디 좀 가는 길이야!!... 응!!... 내일 갈게!!"

전화를 끊자마자 큰 아이가 타박합니다.
"엄마, 목소리가 너무 큰 거 아니야? 동네 사람들 다 들었겠다."
"어머, 그랬니? 전화할 때는 잘 모르잖아."
"우리한테는 길에 다닐 때 큰 소리로 전화하거나 얘기하지 말라면서..."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집 안에서는 물론이고 길을 갈 때도, 마트에서도, 극장 매표소에서도 전화받는 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는 것을.
그럴 경우는 딱 한 가지, 엄마와 통화를 할 때입니다.
저의 목소리가 커진다는 걸 알기에 마음 놓고 소리 지를 수 있는 집 외에서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지 않아요.
집 밖에 있을 때는 엄마가 저에게 전화를 거실 때만 받습니다.

올해 84세인 엄마는 종합 병원이십니다.
지병인 심장질환과 함께 혈압에 당뇨, 노인분들이 대부분 앓고 계시는 관절염에 허리 통증, 오랜 약 복용 탓에 위염 등등 성한 곳 찾는 게 더 빠를 정도지요. 몇 년 전부터는 귀도 잘 안 들리셔서 얼굴 보고 대화할 때도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데, 전화 통화 할 때는 더 크게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엄마는 웃으시며 TV 소리를 낮춰도 입 모양만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얼핏 아실 수도 있다고하십니다.

귀가 잘 안 들리시던 초창기에는 공공장소에서는 통화를 할 때 저도 민망해서 좀 작게 얘기를 했지만, 안 들리셔서 반문 하시면 똑같은 얘기를 두 세 번 반복해서 결국에는 마지막에 큰 소리로 얘기해야 들으시니, 한 번 큰 소리로 얘기하면 5분이면 끝날 얘기를 더 길게 하게 되고 주위에 더욱더 민폐가 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공공장소에 있다고 걸려 오는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없어, 민폐인 줄 알지만 큰 소리로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휴가,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기차 안은 떠드는 학생들이 있긴 했지만, 평소처럼 큰 목소리로 전화를 받기에는 잠자는 사람들도 많았고 나가서 받아도 소리가 다 들어 오는 것 같아, 처음으로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두고두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고 있습니다.

다시 아이와의 대화.
"엄마도 다 알지. 근데 할머니가 잘 못 들으시잖아. 엄마는 창피한 것보다 할머니께서 엄마의 목소리가 안 들리셔서 '에구~ 오늘은 왜 더 안 들린다니~' 하시며 우울해하시는 게 더 싫어. 그래서 창피한 것도 참는 거야. 나이 많으신 부모님이 있는 사람들은 엄마가 전화 하는 내용들어 보면 다 이해할걸."
더 이상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반응형

댓글()